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르놀트 쇤베르크 (문단 편집) == 평가 == 그의 작품들과 12음 기법은 생전에 많은 반대자들을 낳았으며, 대중적 인기로 따지면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의 시기가 '쇤베르크를 따르는 자 vs 쇤베르크에 반대하는 자'의 시기였다고 설명되기는 하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신고전주의를 따르는 작곡가들이 훨씬 수적으로 압도적인 것이 실상이었으며 '쇤베르크 파'인 작곡가들은 특이한 소수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만년에 들어, 전후의 젊은 작곡가들이 그의 무조 음악과 12음 기법에 기초한 음렬주의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바탕한 곡을 쓰면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12음 기법을 음정뿐만 아니라, 길이, 강약, 음색에까지 사용하는 총렬주의로 나아가면서 이 방식은 음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서 한동안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고, 쇤베르크는 선구자적 인물로 추앙받게 되었다. 오늘날의 쇤베르크에 대한 평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형성되었던 숭배 풍조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미적 감각을 거슬러 작곡가의 통제만으로 구성된 음악을 고집한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쇤베르크 진영은 '베토벤의 작품들도 당시에는 이해되지 못한 '현대음악'이었지만 결국 위대한 고전으로 인정받았듯이, 12음 음악 역시 그러할 것이다'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하였지만,[* 쇤베르크는 미래에는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12음 음악을 흥얼거릴 것이라며 자신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이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단 한 번도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 음악학자 스티븐 월시는 "쇤베르크는 탄생 후 150여년이 흘렀음에도 그 음악이 레퍼토리에 진입하지 못한 최초의 '위대한' 작곡가일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다만 월시가 저명한 스트라빈스키 연구자인 만큼 반대급부로 쇤베르크를 까는 것일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음악학자이자 작곡가인 디터 델라 모트는 쇤베르크의 초기 표현주의 무조음악과 언뜻 거리가 멀어 보이는 [[스크랴빈]]의 후기 신비화음 무조음악을 '작곡가의 의도와 별개로' 비교 분석했을 때 화성적으로 거의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델라 모트의 저서 '화성학'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단위화성의 구성음 증가와 조성적 진행 회피라는 목적이 겹쳐져 일어난 필연적 일치로 치부할 수 있다 해도, 어쨌든 '뭐든지 극에 달하면 통한다'는 진리가 적용되는 재미있는 사례.[* 델라 모트가 예로 든 스크랴빈의 전주곡 Op.74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고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무조적 느낌이 강하며, 특히 첫 번째 곡은 신비화음 특유의 색채조차도 (노골적으로 강조되는 두어 지점을 제외하면) 쉽게 느끼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가 신비화음을 매개 삼아 변화해 간 종착지가 쇤베르크의 초기 무조음악과 유사하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